한 권의 책에 얽힌 이야기, 이번 달에는 한비야 선생님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만나봅니다. 이 책을 편집하신 권현진님과의 만남은 설날연휴 직전 대학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푸른숲] 책을 읽어보면 선생님 말투가 굉장히 뭐랄까 통통 튄다고 해야하나요? 마치 옆에서 얘기해주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책에 보면 ‘그러다가 만에 하나 죽게 된다고 해도 아쉬울 것 없다. 그럼 긴급구호 요원이 사우나 하다 죽으랴? 현장에서 일하다 장렬히 전사해야 마땅하지.’ 이런 구절이 나오는데, 제가 잘은 모르지만 선생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재미있더라구요.
[권현진] 예, 굉장히 통통 튀는 문체죠. 원래 성격도 시원시원하시구요. 사람들이 그렇게 묻기도 해요. 워낙 바쁘신 분이고 하니까 대필작가가 쓰는 게 아니냐..그런데 성격이 전혀 그럴 분도 아니시고, 원래 말투세요. 힘을 주는 말투죠.
책이 나오고 나서 독자서평에 보면 ‘힘이 난다, 힘을 주는 글이다.’ 그런 내용들이 많았는데요. 제가 막상 만들 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 근데 제가 뉴질랜드로 연수를 갔었는데 그때 이 책을 가지고 갔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읽어보는데, 그때서야 아..힘을 주는 글이구나..라는 것을 다시 느꼈죠.
[푸른숲] 또 책에 덜렁이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자꾸 뭐 잃어버려서 스트레스 받다가 그냥 인정하기로 하셨다는. 그 얘기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솔직한 모습이 보이기도 하구요. (웃음)[권현진] 네, 그렇죠. 선생님이 책을 쓰실 때, 회의를 하거나 하면 댁으로 부르세요. 회의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면, ‘잠깐만~’하면서 불러 세우시죠. 그래서 이것저것 선물 받은 거를 주세요. 향수도 주시고 스카프도 주시구요. (웃음)
[푸른숲] 선생님 댁은 어때요? [권현진] 굉장히 간소하세요. 정말 딱 필요한 물건들만 있어요. 침대, 소파, 컴퓨터 이런 기본적인 것들. 같은 아파트에 큰언니가 사시는데요, 큰언니가 가까운 곳에 살자고 청하셨는데 마침 집이 나와서 이사를 하셨대요. 히말라야에 있는 것 같다고 책에다 쓰신 적이 있는데 정말 북한산이 집에서 바로 보이거든요. 전망이 정말 좋아요.
[푸른숲] 언제쯤 이 책 작업을 시작하셨나요? [권현진] 2004년 연말쯤에 한비야 선생님께서 책을 쓰기로 하셨어요. 선생님께서 기고활동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래서 그 스크랩한 자료들을 받으러 월드비전 사무실로 찾아갔었는데, 선생님께서 옆에 빈 책상에 앉으라고 하시더니 ‘나는 일을 하면 100% 몰두해서 하는 사람이야. 나는 능력이 70%인 사람에게 100%가 되지 못하냐고 탓하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70%는 모두 발휘해야 된다고 생각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때 많은 부담감이 밀려왔죠.
초고는 원래 이 책 분량의 3배정도 되는 양이었어요. 마치 보고서처럼. 선생님 본인께서도 굉장히 사명감을 가지고 책을 쓰셨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국제 구호활동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거요. 근데 그때 설득을 많이 했죠. 독자들은 한비야 선생님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지, 월드비전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그래서 내용도 좀 바뀌고 분량도 줄어들었죠.
그런데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까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그때는 한국 사람들이 국제적인 구호활동에 그렇게 관심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거든요.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다..그런 생각을 했었죠. 책을 만들 때. 근데 나오고 나서 우리가 예상했던 거는 한 2월 정도의 반응인데,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5월 정도, 벌써 봄인 거예요. 그래서 만들고 나서 반성을 많이 했죠. 기분 좋은 반성. (웃음) 그래서 저한테 더 고마운 책이에요.
[푸른숲] 선생님이 매일 일기를 쓰신다고 들었는데, 그럼 책을 쓰실 때 일기를 바탕으로 쓰시는 건가요? [권현진] 매일 일기를 쓰긴 하시는데요. 일단 책을 써 놓고,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하면서 다시 일기를 읽어보신대요. 책에 보면 트럭이 지나가서 먼지가 날리는데, 그게 다 밀가루였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게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첨가한 구절이예요. 이런 식으로 그때 그 시점에서의 감정/감상 같은 것들을 다시 리마인드하시나봐요.
[푸른숲] 아..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질문인데, 본문에 매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허삼관 매혈기》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는데요, 이건 혹시 편집자의 홍보 전략이 아니었는지..(웃음)
[권현진] 그건 아니구요. 선생님이 푸른숲이랑 계속 작업을 같이 하시니까 푸른숲 책들을 꾸준히 보시잖아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그 책을 원래 좋아하세요. 그리고 《허삼관 매혈기》가 원래 남들에게 권해줬을 때 성공률 100%인 책이잖아요. (웃음)
[푸른숲] 책이랑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요?[권현진] 뉴질랜드에 연수 갔을 때, 제가 이 책 덕을 많이 봤어요.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면 한국에서는 뭐했었냐..그런 얘기가 꼭 나오잖아요. 그래서 편집자였다고 얘기하면 되게 잘해줘요. 외국에서는 편집자가 대접받는 직업이라서. (웃음) 그러면 쉬는 시간에 한국인 학생들이 무슨 책을 만들었냐고 물어보죠. 그래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 친구들이 더 나서서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해주니까요. 덕을 좀 많이 봤죠. (웃음)
그리고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연수를 갔었는데,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등등 근데 선생님 책에 보면 ‘가을 국화는 봄 개나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리고 미래에서 보면 지금의 나는 늙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얻어서 떠날 수 있었죠.
[푸른숲] 네. 저도 그런 얘기들을 종종 들어요. 선생님 책을 읽고 용기를 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거나..하는거요. [권현진] 네.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신거죠. 그 시절에 중동이나 아프리카나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을텐데, 거기를 다 여행하시고… 그냥 훑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깊숙이 그 사회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도 현지 치과의사와의 우정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렇게 현지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쉽지 않잖아요. 말하자면 한비야 선생님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인 것 같아요.
[푸른숲] 그렇죠. 살아있는 현대 세계사 교과서 (웃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맛난 음식까지 대접해주신 권현진님, 그리고 부족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달라는 든든한 말씀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대학로 나들이를 해서 좋았답니다.
<뒷담화>
원래는 책 A를 하려고 했는데(나중에 등장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비밀로...), 저의 보스 Y차장님께서 ‘그거보다는 책 B가 더 할 얘기가 많을 껄?’하며 다른 책을 권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권현진님과 연락을 해주셨죠. 권현진님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지만, ‘책 B는 중간에 투입되서 진행하던 거라 그 책보다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로 한다면 더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은데요.’ 하셨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로 정해졌지요. 물론《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도 제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책이라 책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고, 언젠가는 이 코너에 등장할 책이었지만, 그냥 저 개인적으로 자그마한 세상살이의 원칙을 다시금 체험했다고나 할까요. ‘세상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구나…’ 이상 푸른숲 알맹이였습니다.
인터뷰어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편집자 권현진
인터뷰이 : 푸른숲 문학교양팀 알맹이
푸른숲
2009/03/29 22:02
2009/03/29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