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 에세이] 어떤 봄날에 :: 2009/04/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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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이 쓴 소설 ‘몰타의 매’에는 사라진 남자에 대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한 사내가 갑자기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쳤다. 탐정은 이 사내를 찾아 나선다. 몇 년 뒤 이 사내를 찾아낸 탐정은 작은 충격에 빠진다. 사라진 남자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쳐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탐정이 보기에 그는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옛 여인과 비슷한 여인을 만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 비슷한 사랑을 나누면서 그는 ‘이것이 새로운 삶이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삶으로부터 도망쳤음에도 그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나 그 삶이 별다르지 않다면, 그는 어떻게 사라진 것인가. 아무리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또다시 과거와 같은 삶을 계속하는 것. 그럼에도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 방점이 무한도돌이표인 우리 삶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응방식을 보여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허상인지를 깨닫는 경우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허상의 삶이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또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예전의 삶과 똑같아지더라도……, 비록 내가 붙잡은 삶이 결과적으로 허상이었다 할지라도……, 살아내는 것이다.

또 다시 봄이 왔다. 매번 새 봄이 오지만, 그 봄은 여전히 옛날의 봄이고 낡은 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 봄이든 새롭지 않은 봄이 있을 것인가.

혹시 이 봄에 내 삶이 시시하고, 허망하고, 찌질하다고 느끼는 청춘이 있다면 실망하지 마시라, 아니 실망할 일이 아니다. 본디 삶이란 찌질한 것일지도 모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속에서, 그 봄 속에서 그럼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을 앞에 둔 사람들의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봄은 봄이건만 봄이 아닌 것’은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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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푸른숲 부사장 배문성



2009/04/08 14:36 2009/04/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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