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연금술 - 사랑 좀 해본 편집자의 기획일지 #4 :: 2010/07/26 15:53
“사랑을 잘하는 편집자가 책도 잘 만든다.” 이런 망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어제 새로 들어온 편집자분들과 밥을 먹으며 소개팅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망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저의 망언에 입각하여 선임 편집자들이 신입 솔로 편집자들에게 소개팅을 해주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했더랬습니다. 사랑을 알아야 편집도 하지. 그게 이 블로그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고요.
요즘 저는 엄기호 선생님과 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엄기호 선생님을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실연을 하고 남미로 훌쩍 날아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는 비행기에서 헤겔과 기타 등등을 펼쳤는데 난해하고 복잡했던 헤겔의 말이 쏙쏙 들어오더란 겁니다. 짝짝짝 박수까지 쳐가며 저는 급공감을 했더랬습니다. 맞아요. 어려웠던 개념, 관계에 ‘사랑’을 넣어보면 쑥 이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작업 중인 원고에 사랑에 대한 멋진 글이 등장합니다.
사랑은 난생 처음 내가 타자에 의해 자아가 붕괴되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만이 중요하다. 모르는 존재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사랑의 경험이다. 사랑은 등가교환과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반면 실연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세상에서 자부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전혀 모르는 존재로 돌변하는 사건이다. 실연을 통해 사랑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상실을 감수하는 것을 배운다. […]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와의 만남. 이것을 통해 인간은 성장해간다. 이것이 사랑과 실연의 드라마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번 글을 쓰기로 한 것 또한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를 읽다가 발견한 이런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희극의 외피를 쓴 반복이 원래의 비극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는 것.” 아~~~ 가슴이 아립니다.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고요? 자 그럼 사랑의 눈으로(@_@, *_*) 이 험난한 글들을 읽어볼까요? 사랑의 연금술은 이 모든 말들이 사랑으로 읽히는 게 가능하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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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은 대화와 양립할 수 없다. 겸손함이 결여된 (혹은 겸손함을 잃어버린) 사람은 민중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그들과 함께 세계를 이름 지을 수 없다. (파울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민중’만 ‘사랑’ 또는 ‘연인’으로 바꾸면 그대로 성립하는 말이겠지요.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그리고 사진은 일종의 연금술로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때때로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훨씬 더 잘’ 보게 되며,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이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 역시 ‘사진’ 대신 ‘사랑’만 넣으면 성립하는 말이겠네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금에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어서 다른 상품들과 교환될 수 있고 그것들의 가치척도가 될 수 있는가. 그들은 다른 상품들과 비교함으로써 금의 신비를 밝히고자 했다. 애당초 가치란 그렇게 발견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치는 한 상품이 다른 상품들과 맺는 ‘관계’이지, 한 상품에 내재한 고유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병권, 《화폐, 마법의 사중주》)
금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신비한 힘, 그러나 사랑에 내재한 고유성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힘,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요?
서도는 동양의 관계론적 원리가 아주 잘 녹아있는 장르입니다. 붓글씨를 쓸 때는 처음에 쓴 획의 각도가 비뚤어졌다고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쓰지 못합니다. 그 다음 획을 통해 결함을 교정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안 되면 다음 획으로, 또 안 되면 다시 다음 획으로…….또 글자가 틀리면 역시 다음 글자로 고쳐야 하죠. 한 행의 잘못은 그 다음 행으로 보완하고요. 이런 식으로 고쳐가면서 쓰다 보면 글씨를 쓰는 내내 굉장히 여러 곳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신영복, 《여럿이 함께》)
아,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하는 그 말이랑 어쩜 이리 똑 맞아떨어지는지요.
이번에는 사랑의 비극에 대해서 들춰볼까요?
1920년대 미국의 암흑가 보스로 악명이 높았던 알 카포네는 수많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탈세죄로 감옥에 갔다. (그레고리 맨큐, 《맨큐의 경제학》)
그렇습니다. 연애의 파탄은 아주 약한 고리에서 시작되는 법입니다.
어떤 과정이든 거기에 많은 모순이 있다면 그중에서 반드시 한 가지 모순은 주요한 것으로서 주도적, 결정적 역할을 하고 기타의 모순은 부차적이며 종속적 위치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을 연구하든지 그것이 만약 두 가지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잡한 과정이라면 전력을 다하여 그 주요 모순을 찾아내야 한다. 이 주요 모순을 파악하면 일체 문제가 순순히 풀린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사회를 연구할 때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방법이다. 레닌과 스탈린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를 연구할 때와 소련의 경제를 연구할 때에 역시 이 방법을 보여주었다. (마오쩌둥, 《모순론》)
(이거 슬슬 억지스러움이 묻어나오기는 하나) 어떤가요? 연애의 모순. 주요 모순과 주변 모순. 지난 어떤 사랑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국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의 기본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상대편의 언어는 그들의 프레임을 끌고 오지, 결코 내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상투적인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들. 쟤가 나한테 도대체 왜 저러나 싶지만 “나, 너 안 좋아해”를 수십 번 반복하느라 그 ‘너’를 좋아하게 되는 장면 말입니다.
다음은 솔로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 멘트들 되시겠습니다.
헤지펀드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시장 거래량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헤지펀드의 중요성은 그러나 역설적이다. 거래량에서 헤지펀드는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겨우 4%밖에 안 된다. (존 버글, 《만국의 주주들이여, 단결하라》)
빈익빈 부익부, 사랑의 절대 법칙입니다.
‘잉여’란 여분, 불필요함, 무용함을 의미한다. - 유용성과 필수불가결함의 기준을 설정하는 필요와 유용성이 무엇이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당신 없이도 잘 할 수 있고, 당신이 없으면 더 잘 할 수 있다. 당신이 거기 있어야 할 어떤 자명한 이유도 없고, 당신이 거기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만한 어떤 뚜렷한 정당성도 없다. 잉여로 규정된다는 것은 버려져도 무방하기 때문에 버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아, 눈물이 앞을 가려 그 어떤 말도 달지를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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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뜻이었습니다. 세상이 열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 사랑만큼 강렬한 것도 없잖아요. 기쁨도 더 크게, 슬픔도 분노도 짜증도 서러움도 더 크게 만들어주는 증폭기가 사랑이니까요.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그나저나 우리 신입들의 사랑은 시작될 수 있을까요? 어흥.




